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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중국

병마용갱에서-중국 서안에서(20130414)

by 청계 1 2013. 5. 9.

 

병마용갱에 들어갔습니다.
병마용이 줄지어 선 모습이 장관입니다.

 

 

 

 

 

 

 

 

 

 

 

 

 

 

 

 

 

 

 

 

 

 

 

 

정면에서 내려보다가 옆으로 돌아나와서 살펴보았습니다.
병마용갱은 진시황제의 장례에 사용된 테라코타들입니다.
병사, 말 등을 흙을 사용하여 등신대로 제작하여 구워 만들었다고 합니다.
병마용은 전사, 전차, 말, 장교, 곡예사, 역사, 악사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병용은 키가 184cm에서 197cm로 큰 편이며 장군이 보다 크게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발굴된 4개의 갱도 중 3곳에 모두 8천여 점의 병사와 130 개의 전차, 520 점의 말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아직 상당수가 흙 속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병마용갱은 1974년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말과 병사병마용의 병사들은 장인들에 의해 머리, 몸통, 팔 다리가 각각 제작된 후 결합되었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 제각기 다른 얼굴을 위해 8 종류의 틀이 사용되었고,
다른 부위도 각기 여러 종류가 있어 이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병마용을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리 부분은 대부분 동일한 형태로 같은 틀을 사용하여 대량 생산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조립을 위해서는 각각의 부분을 맞춘 뒤 다음 과정으로 넘겨주는 생산 공정에 따른 조립 라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마용은 살아있는 듯한 모습의 등신대로 제작되었으며 얼굴 부위에는 채색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병마용의 존재는 진 시황제의 권력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뒤편에는 보수를 하고 있는 병마용이 있었습니다.

  

 

 

 

 

 


 
뒤에서 본 병마용갱의 모습입니다.

 

  

 

 

 

 

 

 

 

 

 

옆으로 돌아가니 말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시황릉이 70만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기원전 246년에 건축되기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천의 기록은 진시황릉이 완공된 후 1 세기가 지난 때에 저술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진시황릉이 지하에 황궁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은 규모였으며 수은이 흐르는 100여개의 강과 수십 개의 망루를 가진 도성에 온갖 보물과 병사를 조성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진시황릉은 지하 궁전으로 지어졌으며 완공이 된 후에는 도굴을 막기 위해 인부들을 생매장하였다고 합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면으로 와서 보는 모습이 정말 장관입니다.

 

  

 

 

 

 

 

 

 

 

 

 

 

 

 

 

 

 


2호갱은 지나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