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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터어키

트로이 유적지에서(20140327)

by 청계 1 2014. 5. 13.

 


트로이 목마를 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너진 건물 잔해가 보입니다.
트로이 유적지입니다.

 

 

 

 

 

 

트로이 대한 안내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내용을 옮깁니다.

 

스카만데르 강 북쪽과 헬레스폰트 해협의 남쪽 어귀로부터 약 6.4km 떨어진 트로아스 평야에 있었다.
트로이 전설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였으며, 호메로스 서사시의 근간을 이룬다.
광활한 유적 덕분에 트로이는 고대세계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적지가 되었다.
청동기시대에 트로이가 누렸던 세력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통로를 지배하는 전략적인 위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BC 3000~2000년에 번성한 문화 중심지로서, 트로아스의 농업 공동체들을 지배하던 왕권의 수도였다.
BC 1100년경부터 버려졌다가 BC 700년경에 그리스 정착민들이 트로아스를 차지하기 시작하자 트로이에도 다시 사람들이 살게 되었으며 일리온이라는 이름으로 4세기까지 존속했다.
BC 6세기말부터 이 지역은 페르시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아시아 남서부의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 왕국, 로마인들에 차례로 점령당했다.
BC 85년 로마인이 약탈한 후 같은 해에 로마 장군 술라가 부분적으로 복구시켰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다른 황제들이 많은 애정을 기울였다.
그러나 324년에 콘스탄티노플이 건설되고 나서 일리온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갔다.
투르크인들이 히사를리크라고 불렀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일리온 유적을 포함한 것으로 오랫동안 알려졌던 구릉이
1822년 찰스 맥라렌에 의해 호메로스 시대의 트로이 소재지로 밝혀졌으나, 학자들이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은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에 발굴을 시작한 이후였다.
1890년 슐리만이 죽은 뒤에도 그의 동료인 빌헬름 되르펠트에 의해(1893~94), 그후에는 신시내티대학교의 원정대에 의해(1932~38) 발굴작업이 계속되었다.
슐리만과 되르펠트는 집들이 건설되어 사람들이 살다가 마침내는 파괴되어 버린 아홉 기(紀)를 나타내는 9개 주요지층의 순서를 밝혀냈다.
제1~7기 트로이는 요새, 트로아스의 수도, 왕의 가족·신하·노예들이 살았던 왕의 거주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1~5기는 청동기시대 초기(BC 3000경~1900)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 기간 동안의 주민들이 에게 해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 헬라도스 문화기의 그리스 본토에 살던 주민들의 선조였을 것이며,
아나톨리아 남서부 또는 시리아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된다.
트로이 제6·7기는 청동기시대 중기와 말기(BC 1900경~1100)에 해당한다.
불과 한 세대 동안 지속되었던 제7a기는 BC 13세기경 발생한 화재로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이때의 트로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Iliad〉에 묘사된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의 파괴 이후 약 400년간 이곳은 사실상 버려졌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정착한 것은 제8기이며,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일리온은 제9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곳곳에 허물어진 축대와 기둥, 돌 등의 잔해가 흩어져 있습니다.
그 주변에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있습니다.

 

 

 

 

 

 

 

 

 

 

돌로 쌓은 축대가 가지런하고 담이 두텁습니다.

 

 

 

 

 

 

 


돌로 쌓은 경사진 벽이 높습니다.
벽 사이로 통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돌로 쌓은 경사진 벽 옆에서 노란색 꽃이 피었습니다.

 

 

 

 

 

 

 

 

 

 

 

 

 

유적이 발굴된 곳에는 안내판이 있고 나무로 통로도 만들었습니다.
통로 옆에 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통로에 오르니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졌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바다일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안내판에는 사원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통로를 이용하여 발굴된 유적지를 차례대로 돌아보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통로가 끝이 나고 흙길로 통로가 이어졌습니다.
시대가 다른 곳임을 쌓여진 모습이 알게 합니다.

 

 

 

 

 

 

 

 

 

 

 

 


지붕을 만들어 보호하는 곳도 있습니다.

 

 

 

 

 

 

 

 

 

 

돌로 쌓은 벽이 깊습니다.
축대 위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뒤로는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돌로 투텁게 쌓은 담의 기초도 보입니다.

 

 

 

 

 

 

 

 

 

 

 


골이 패여진 곳에도 돌이 쌓인 흔적이 보입니다.
곳곳이 유적입니다.

 

 

 

 

 

 

 

 

 

 

 

 

나무 아래에는 의자가 놓였습니다.
유적을 돌아보다가 쉴 수 있는 곳인데 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변에도 유적의 잔해가 많이 보입니다.

 

 

 

 

 

 

 

 

 

돌로 쌓은 축대 가운데로 바닥에도 돌을 깐 길이 있습니다.
골에도 돌로 벽을 쌓았습니다.

 

 

 

 

 

 

 

 

 

 

 

 

 


꽤나 넓은 통로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옆에는 돌로 쌓은 벽이 가지런합니다.

 

 

 

 

 

 


큰 돌을 깔아놓은 모습도 보입니다.
돌이 깔린 터가 넓습니다.

 

 

 

 

 

축대로 단을 만든 곳에 돌을 쌓은 구조물이 보입니다.
우물인 모습도 보이고 무덤이었을 것도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통로로 이어진 길을 따라 가니 우리가 지나온 길을 따라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트로이 오데온이 있는 곳입니다.
부서진 유물 아래에서 꽃이 피고 있습니다.

 

 

 

 

 

 

 

 

 

 

 

 

트로이 오데온 지나서도 유적터가 있습니다.